[단막 희곡] 매미_#002

단막극 매미 / 2017.07.08 IS-BE 作


참매미




– 매미 –


– 암전 –

막이 열리며 천둥번개를 동반한 강한 폭풍우의 빗소리가 객석 뒷편까지 울려퍼진다.

중간중간 천둥소리가 매섭게 울린다.

무대 뒷편에는 다 떨어져가는 타일이 박힌 콘크리트가 벽을 이루고 있다.

벽의 한 편에 깜빡이는 조명이 달려있고 바로 밑에 벽에 ‘폐쇄예정’이라 적힌 통행금지 경고문이 붙어있다.

경고문의 옆에는 지상 출입구로 향하는 계단이 있다.

다른 한 편의 조명은 달려있으나 꺼져있고 어두운 길이 나있으나 잘 보이지 않는다.

깜빡이는 조명 아래에 노숙자2가 자고있다.

벽의 조명이 깜빡거리기 시작 할 때 노숙자1이 옷 소매로 입을 닦으며 어두운 길 쪽에서 등장한다.

[노숙자1] (입을 닦으며) 여기도 더 이상 있을 곳이 못 되는군.


누워있는 노숙자2를 발견하고 옆에 앉아 멍하니 바라본다.

크게 울리는 천둥소리.


[노숙자2] (악몽에 시달리다 깨어나며) 죽여버릴거야…!


(사이)

노숙자2는 주위를 둘러보다 노숙자1을 발견한다.


[노숙자1] 흥, 날씨만큼 지랄맞은 사연을 지닌 친구인가보군 그래.

[노숙자2] 암요. 내 인생은 한번도 안정적인 적이 없었어요.

그렇다고 늘 비극이었던 것도 아니었지만요..

폭풍우를 피할 수는 있어 다행이지만 잠 자리는 정말 적응이 안되는군요.

한 때는 많은 사람들의 총애를 받으며 살던 내가 어쩌다 이렇게 사람들 눈을 피하면서 살게 되었는지..

중학생 담배나 대신 사주면서 말이에요..!

[노숙자1] 후후.. 밑바닥 신세에 배부른 소리하는군.

어디서 뭐하다 굴러온 놈인진 모르겠지만..

잠꼬대를 보아하니 동지보단 적이 많아보이는데 자넨 숨이 붙어있는것이 그리 유쾌하지 않은가보지?

그렇다면 죽는게 낫지 않나?

[노숙자2] 물론 그 생각도 안해보진 않았지만 걸리는게 있어서요.

난 어릴적부터 감이 좋았는데, 조만간 해방이 될 것 같아요.

이 시궁창 삶을 끝낼 수 있는 해방 말이에요.

[노숙자1] (흥미로운듯) 꽤나 낙관적이군.

하지만 너무 막연한거 아닌가?

지금 자네 꼴을 좀 봐.

막연한 꿈은 일찌감치 접어야 짧은 제 명 편하게 살다 갈 수 있어.

누구도 제 운명을 피해갈 순 없다는 말이야.

백날 발버둥 쳐 봐라.

겪게될 일은 겪게 되어있고, 피해갈 일은 피해지게 되기 마련이야.

나이도 어려보이는데 자네 같은 놈들 수없이 많이 만나봤지만 한 껏들 떠들다가도 곧 제 운명을 맞이했지.

그래도 자네 말 대로 제 운명을 느낄 수 있는 재주는 타고나긴 했나보군.

[노숙자2] 단지 느낌만으로 말하는건 아닙니다.

날 이렇게 만든 놈들에게 복수하지 않고서야 도저히 편히 눈감을 자신도 없구요..

무엇보다 울 아부지가 미래를 보시는 예언자셨는데 내 앞날을 말씀하시면서 마지막 시련 끝에 안정이 찾아올거라고 늘 말씀하셨어요.

난 사업가였는데 한 때 번창할 수 있었던 이유도 아버지의 예언 덕분이었죠.

사람들은 아부지가 사이비 교주다 무당이다 말들이 많았지만 난 단 한번도 울 아부지를 의심한 적이 없어요!

물론.. 지금은 시궁창이지만..


(사이)


[노숙자2] 그런데, 어디서 비린내 안나나요?

[노숙자1] 비 비린내야.

여긴 곧 폐쇄될 예정이라 하더군.

어제 새벽에 시청직원이 저렇게 표지판을 붙혀놓고 갔어.

무서웠는지 안쪽까지 들어오지도 않고 저쪽 출입구까지만 들어와서 잽싸게 붙히고 달아나더군.

이렇게 어둡고 인적도 없고 오랜시간동안 방치된 곳에서 그간 발생한 사고를 이제 와서야 방지하겠다는거지.

[노숙자2] 그럼 우리같은 사람들은 어디로 가야 하죠?

[노숙자1] 자네 아버지한테나 물어보지 그래.


(사이)


[노숙자1] …원래 인간이란 종족은 본능과 욕구의 지배를 받는 그저 흔한 동물 중 한 갈래일 뿐이야.

자기욕구 실현에 도움이 돼야 움직인단 말이지.

본능적으로 하찮다고 평가받은 대상은 그냥 저기 개미처럼 밟혀 죽을 운명인거야.

[노숙자2] 하. 지금 제 꼬라지가 이렇다곤 해도 저는 그 말에 동의할 수는 없네요.

저는 제 의지대로 살아왔고, 노력의 대가로 한 때엔 성공했던 사람이니까요.

저는 절대 제 의지에 반해서 죽지 않을 겁니다.

[노숙자1] 재미있군.

그럼 그만 노숙생활을 청산하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그래.

[노숙자2] 가족이라..

부모님은 이미 오래전 돌아가셨고, 가족이라곤 하나 뿐인 아내가 있었죠.

하지만 그 여잔 짐승만도 못한 인간이였습니다.

내 사업이 한창 잘 될 때는 자칭 내조의 여왕이라며 내게 온갖 아양을 떨어댔지만, 사업이 힘들어지고 여기 저기 채권자들이 찾아오니 내 집에서 날 쫓아냈죠.

그리고 곧 태어날 운명이었던 우리 아이.

그 여자 본인의 새 인생을 위해 스스로 계단에서 굴러 유산까지 시킬정도로 악랄한 여자였습니다.

그런 여자를 위해서 동료들도 배신하고 모든걸 바쳤다니..

그 여잔 정말 짐승만도 못한 인간입니다.

[노숙자1] (웃음) 정말 재미있군.

결국 자네 선택에 따른 결과 아닌가?

[노숙자2] 이봐요, 잘 알지도 못 하면서 막말하지 마세요!

나는 순수하게 그 여자를 사랑했으나, 악마같은 그 여자의 변심으로 버려진 거라구요.

나는 그 여자와의 미래를 위해 최선을 다했어요.

그 과정에서 수 많은 피를 보기도 했지만 전부 그 여자와의 미래를 위한 일이었다구요.

[노숙자1] 세상 탓을 하고 싶은게로군.

그래서 자넨 이 생활이 얼마나 됐나?

[노숙자2] 해가 뜨면 15일째가 되네요.

여기는 어제 낮에 비를 피하다가 도착했구요.

난 머지않아 이 시궁창 삶을 종지부 찍을겁니다.

지금은 학생들 담배사주면서 푼돈 모으는 신세지만 난 이렇게 살 사람이 아니에요.

[노숙자1] 그럼 술이라도 사 마시지 그래.

[노숙자2] 그러니까 당신이 그러고 사는 겁니다.

나 처럼 주관이 확실한 사람은 이런 푼돈에 불과한 돈도 허투로 쓰지 않는다구요.

당신처럼 술이나 마시는데에 낭비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노숙자1] 하이고 그래.

아주 대단하신 양반을 영접하는구만 그려.

[노숙자2] (돈뭉치를 꺼내서 세어보이며) 어제보니 근처에 편의점이 있던데 이정도면 오늘은 편의점에 가도 되겠군.

[노숙자1] 그래.

나가서 맛있는거 잔뜩 먹고 오게나.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다고 하니. 후후.

[노숙자2] 나는 이런 곳에서 안 죽습니다.

[노숙자1] 아무렴.

자네는 의지대로 노력하며 사는 성공했던 사람이니까.

오늘 밤은 정말 덥군.

난 여름이 싫어.

너무 덥고 비도 많이 오고.

무엇보다 그 시끄러운 매미들.

매미만 보면 다 죽여버리고 싶어.

어릴 적 매년 여름에 매미가 울기 시작하면 잠자리채를 들고 동네방네 돌아다녔지.

내가 살던 동네 매미들은 내가 다 잡아버려서인지 조용해서 좋았어.

모두에게 고요한 밤을 선사한거지.

요즘엔 나같은 어린이들이 없는지 매미소리가 너무 시끄럽단 말이야.

[노숙자2] 보기와는 달리 꽤나 순수한 어린 시절을 보냈나 보군요.

[노숙자1] 난 지금도 그 때와 똑같이 순수하다네.

(술병을 들고 마시며) 물론 이걸 마시면 더 순수해질 수 있지.

그렇게 쳐다보지 말고 한 입 하지 그래? 또 언제 마실 수 있을지 모르니 말이야.

[노숙자2] 괜찮습니다.

난 나가서 더 좋은 음식을 먹으렵니다.


노숙자2가 일어나서 어두운 곳으로 향하다 발을 멈춘다.


[노숙자2] 아우 냄새.

이거 무슨 냄새에요? 어두워서 보이질 않네.

[노숙자1] 아 거긴 내 부엌 겸 화장실이네.

아마 하수구가 막혀서 바닥에 오물이 널려있을걸세.

[노숙자2] (한심하다는 듯) 쯧쯧..

정신좀 차리고 사세요.


노숙자2가 출구로 나간다.

노숙자1이 계단을 응시하다가 남은 술을 다 비운다.


[노숙자1] (웃음)


노숙자1이 일어나서 어두운 쪽으로 들어간다.

빗소리와 천둥소리가 울린다.

잠시 암전.

천둥번개를 동반한 폭풍우 소리가 울려퍼진다.

잠시 뒤 노숙자2가 비틀거리며 들어온다.

손에는 소주2병이 담긴 비닐이 들려있다.


[노숙자2] 영감님! 영감님! 어디간거야 이 양반.

아흐 오줌이나 누러 가자.


노숙자2가 어두운 쪽으로 향한다.


[노숙자2] (목소리) 뭐.. 뭐야..!


잠시후 들려오는 길고 섬뜩한 비명.

유리 깨지는 소리와 함께 비명이 멎는다.

천둥소리가 울려퍼지고 노숙자1이 나온다.

한 손에는 깨진 소주병을 들고 계단으로 중얼거리며 나간다.


[노숙자1] 내년에도 보자 매미야.


퇴장.

깜빡이던 조명이 아예 꺼지면서 암전.

빗소리가 한동안 계속되다 멈추고 잠시 뒤 매미소리가 울린다.

– 막 –


본 창작물의 무단 배포 및 복제를 금합니다.

다른 컨텐츠 보러가기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