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 – Steps_#003

아파트 30층, 약 120M.

성인 남성 평균 신장의 약 69배.

“지금부터 그 높이를 올라라.” 라는 목표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가사에 집중하면서 한 발짝 내딛어 올라가 본다.

아무생각 없이.

노래 한 곡이 끝날 때 쯤 이미 절반 가량은 올라온 상태.

“어, 생각보다 할만하네.”

라는 생각도 잠시, 머릿속에선 올라온 층수와 남은 층수를 계산하기 시작하고 갑자기 다리가 굳는 것 같다.

눈 앞에 딛어야 할 계단을 의식하면 할 수록 그 고통은 더 해진다.

숨이 차 오른다.

돌아가기엔 이미 올라온 계단이 너무 아깝게 느껴진다.

다시 노래 가사에 집중하려 애쓴다.

몸이 힘듦을 인지했지만, 그냥 계속 오른다.

노래 가사도 들리지 않고, 아무 생각이 없어진다.

그냥 계속 걸어 올라간다.

“이 더운 날, 왜 이 짓을 하고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 무렵 목적지에 도착했다.

도착하고 보니, 생각보다 힘들지 않고 이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기만 하면 된다는 사실에 해방감이 든다.

그런데, 이상하게 허무하다.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다는 사실이 허무한 것일까.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다는 사실이 허무한 것일까.

더 이상 올라갈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 허무한 것일까.

그냥 ‘끝.’ 이라서 허무한 것일까.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간다.

다시 올라가는 계단에 한 발짝 내딛는다.

이번엔 다리에 들어가는 힘을 느끼면서 올라가리라.

이번엔 호흡을 느끼면서 올라가리라.

이번엔 불만불평을 줄이면서 올라가리라.

“이번엔 더 잘 올라가리라.”

살아간다는 건 계단을 오르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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